블로터(BLOTER). 2015. 04. 17 | [기사원문링크: http://www.bloter.net/archives/225878 ]

 

‘농업’이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보통 한적한 시골의 논이나 비닐하우스 정도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나 ‘스타트업’이란 단어는 어떨까. 생활을 혁신할 차세대 기술, 혹은 도시 마천루 사이에 숨어 글로벌을 꿈꾸는 작은 기술 기업. 이정도가 무난한 상상 아닐까. 농업과 IoT 기술에서 느낄 수 있는 거리감은 도시와 농촌 사이보다 멀다.

IoT 기술을 들고, 농업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스타트업도 있다. 대형 기술 업체에서도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사물과 사물의 자유로운 통신이 농업을 혁신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 이들은 손바닥 속 첨단 스마트폰이나 도심속 마천루 대신 논과 밭, 비닐하우스에서 혁신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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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T는 제조업 아니에요”

“식물도 IT 비즈니스랑 똑같아요. 식물을 잘 키우려면 재배 시설이 필요하잖아요. 좋은 땅과 설비 등이죠. 이건 하드웨어고요. 그런데, 아무리 설비가 좋아도 정작 사람이 재배법을 모르면 식물을 키울 수 없어요. 이게 소프트웨어 아닐까요.”

김혜연 엔씽 대표는 선릉역 D캠프에 스타트업을 차렸다. 김혜연 대표의 관심 분야는 농업이다. 4월 들어서는 미국 소셜펀딩 서비스 킥스타터에 프로젝트도 등록했다. 모금 종료까지 아직 한 달이 넘게 남았는데, 벌써 목표 금액의 절반 가까이를 모았다. 목표한 돈은 1억원. 제품의 이름은 ‘플랜티’다. 엔씽 동료들의 아이디어와 디자인, 그리고 비전을 꾹꾹 눌러 담은 꿀단지다. 스스로 화분에 물을 주는 스마트 화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플랜티의 동작 원리는 간단하다. 화분은 와이파이를 통해 집 안의 공유기에 연결된다. 플랜티 화분에는 500ml 용량의 물탱크가 있어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플랜티와 연동할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앱)을 내려받아 사용하면 된다. 스마트폰 앱에서 단추만 누르면, 화분이 식물에 스스로 물을 주는 구조다. 화분 몸체 속에는 PCB 보드도 탑재돼 있다. 기본적인 전자제어를 담당하는 역할이지만, 흙의 습도와 실내의 온도 정보를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여행을 떠나느라 집에서 기르는 화분이 걱정이라면, 플랜티가 좋은 대안이다.

“집에서 화분으로 식물을 많이 키우지만, 그만큼 많이 죽이기도 해요. 식물을 죽이는 이유는 2가지에요. 하나는 너무 관심이 없어서. 다른 하나는 너무 관심이 많아서.”

화분에 너무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아 식물을 말려 죽인 경험은 누구나 있다. 반대로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식물과 동거하는 것에 실패한 이들도 많다. 둘 다 식물이 원하는 흙의 적절한 습도를 맞추지 못해서다. 플랜티 화분과 앱을 이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얼마나 오래 물을 주지 않았는지 앱으로 알 수 있고, 흙의 습도가 위험수치를 넘어서면 스마트폰으로 푸시 알림도 받아볼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계정을 앱에 등록해 여럿이 함께 쓸 수 있으니 누가 물을 언제 줬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이들도, 가족이 함께 살면서 작물을 돌보는 이들도 모두 쓰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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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으로 물을 주는 화분을 만들면 되는 일 아니었을까. 김혜연 대표는 왜 굳이 스마트폰으로 사람이 조작해야 하는 화분을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면, 김혜연 대표의 다음 설명을 들어보자. 지금은 작은 스마트 화분을 개발했을 뿐이지만, 엔씽은 IoT 기술을 바탕으로 농업 분야에 발자국을 남길 계획이다.

“처음에는 자동 화분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동 화분이라면, 인터넷에 연결될 필요가 없어요. 자동 화분은 그냥 인테리어 소품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식물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끊임없이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는 데 주목했어요.”

플랜티 화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용자가 식물을 다루는 습관을 모두 서버에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바질을 키울 때, 혹은 작은 방울토마토 작물을 가꿀 때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물을 주고, 볕을 쪼인다. 플랜티는 처음에는 사용자가 쌓는 식물 재배 정보를 조용히 받기만 한다. 기록이 쌓이면 돌려주는 솔루션이다. 그동안의 패턴을 분석해 이 때 쯤이면, 물을 줘야 하다는 것을 거꾸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선을 전세계로 넓혀보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질을 가꿀 때와 한국의 서울에서 바질 화분을 기를 때 과연 똑같은 방법으로 기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역에 따라 기온과 습도, 일조량이 다른 탓이다. 엔씽의 서버에는 어떤 지역에서 어떤 작물을 기를 때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정보가 기록된다. 엔씽이 원하는 것은 화분을 팔아 얻는 마진이 아니다. 바로 이 데이터다.

현재 엔씽은 플랜티 이후 두 번째 제품을 준비 중이다. 두 번째 제품은 화분이 아니다. 땅에 꽂을 수 있도록 설계한 센서 장치다. 토양의 산도와 전기전도(비료의 농도), 온도 등을 체크할 수 있는 센서를 제품에 탑재할 예정이다. 활용처는 가정이 아닌 농장이다. 농장의 땅에 일정한 간격으로 센서를 심어두면, 농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에도 연결 되고, 땅의 변화 정보는 디지털 데이터가 돼 엔씽의 서버에 쌓인다. 농부가 농장의 토양을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센서 장비와 연동하는 별도의 앱도 개발할 예정이다. 아직 시제품을 개발하는 단계지만, 벌써 호주의 한 목화 농장과 기술에 관해 의논중이라는 게 김혜연 대표의 설명이다.

“IoT는 제조업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데이터를 가공해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디어일수도 있어요. 하드웨어는 다른 제조업체가 쉽게 카피할 수 있어도, 우리가 쌓아 놓은 데이터는 카피할 수 없잖아요. 우리는 농부이되, 열매 대신 데이터를 수확하는 그런 농부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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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혁신의 볼꽃, 버섯 농가로 번질 겁니다”

실제 IoT 기술을 접목한 농장이 경기도 양평에 있다. 딸기를 기르는 비닐하우스 농장이다. 딸기는 대표적인 겨울철 하우스 작물이지만, 생육 조건은 섭씨 5도에서 37도 사이다. 하우스 온도가 3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생육이 멈추고, 37도를 넘어가면 생육 장애가 발생한다. 온도가 너무 낮아도 안 된단다. 온도가 5도 이하로 온도가 떨어지면, 냉해 때문에 농가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재배까 까다로운 작물이다. IoT 기술이 작물 재배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와 국내 하드웨어 센서 장비 제조업체 퓨처텍이 양평의 딸기 비닐하우스에 IoT 기술을 도입했다.

“낮에 빛을 많이 받으면, 하우스 온도가 4~50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는 문을 열어 통풍을 시키고요. 명절에도 딸기 하우스 가진 분들은 멀리 못 가신다고 해요. 자리를 오래 비울 때는 이웃에 하우스 관리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양평 딸기농장 프로젝트를 담당한 김영욱 한국MS 부장은 “21세기지만, 농업은 여전히 사람을 필요로 한다”라며 “농가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라고 설명했다.

한국MS와 퓨처텍이 딸기 농장에 도입한 기술의 구조는 이렇다. 농장을 감시할 수 있는 센서 장비가 가장 앞에서 하드웨어 역할을 한다. 센서에서 신호를 받아 통신을 하도록 돕는 게이트웨이가 설치돼 있고, 게이트웨이에서 데이터를 전송하면 이를 받아들이고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센서와 통신 게이트웨이 장비 개발은 퓨처텍이, 서비스 부분은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가 도입됐다.

IoT 딸기 하우스의 농부는 더이상 하우스 온도 때문에 밤잠을 설칠 필요가 없다. 농장의 상태를 웹브라우저나 스마트폰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덕분이다. 딸기 서리를 방지할 수 있도록 퓨처텍이 동작 감지 센서를 추가한 것도 재미있다. 누군가 농장에서 딸기 서리를 시도하면, 농부는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영욱 부장은 IoT 기술 도입이 국내 농가가 마주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가의 고령화와 인력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잖아요.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좋겠죠. 다품종의 작물을 고품질로 재배해야 하는 필요성도 있고요. 아마 이런 일들은 사람의 감각과 경험에만 의지해왔던 지금의 농업 방식으로는 어렵지 않을까요.”

특히, 딸기 재배 주기를 따라 비닐하우스가 최적의 생육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IoT 딸기 농장의 핵심이다. MS가 애저의 머신러닝 기술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의 도움으로 농부는 작물의 출하 시기와 품질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딸기는 생육 기간이 길어 데이터가 쌓이는 속도가 느립니다. 하지만 버섯은 1년 내내 재배할 수 있다고 해요. 바양장에서 버섯을 기르는 데 어떤 종은 일주일이면 가능하다고 하니까요.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쌓이겠죠.”

한국MS와 퓨처텍의 다음 목표는 버섯 농가다. 버섯 농가에는 산소 농도를 감지하는 센서나 빛을 측정하는 센서, 습도 센서 등 더 다양한 기술이 접목될 것으로 기대된다. 농부가 직접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대신, 스마트폰에 뜬 이벤트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시나리오도 머지 않았다.

“IoT를 단순한 제조업과 진짜 IoT로 구분하는 것은 바로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지금 IoT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보여주는 데 까지 왔다고 봅니다. 0.5버전이라고 할까요. 앞으로 IoT의 1.0 버전은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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