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018. 02. 12 | 기사원문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22365212 ]

“모든 사람이 농부가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제가 하는 일입니다.”

‘농업 IoT’분야 개척 김혜연 엔씽(n.thing) 대표

30대 초반 청년이 농업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농업이라고 하면 직접 농사를 짓는 일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건 아니에요. 농사와 IT(정보기술), 그중에서도 IoT(사물인터넷)를 결합했답니다. 식물의 성장을 모니터링하고 스스로 가꾸는 스마트 화분 ‘플랜티(planty)’를 개발한 김혜연 엔씽(n.thing) 대표(32)의 이야기죠.

김 대표는 2014년 1월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농업 IoT’ 창업에 도전했어요. 스마트 화분 플랜티를 통해서인데요. 플랜티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화분이죠. 하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도 스스로 식물의 상태를 살펴 물을 공급하고 키우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화분은 스마트폰과 연결되죠. 스마트폰에서 플랜티 앱을 실행하면 △토양의 습도 △온도 △일조량 등 식물의 상태를 보여줘요. 화분 토양의 습도가 낮으면 ‘물주기’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화분이 알아서 물을 공급해 흙을 적셔줘요. 일조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나면 화분을 창가에 두면 되고요.

그가 플랜티를 개발한 과정은 과거 수많은 경험과 연결돼 있어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한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 과거의 점들을 이어라)’와 같은 건데요. 과거의 경험들이 점처럼 모이면 하나의 선이 되어 자신의 인생이 된다는 의미죠. 김 대표는 “잡스의 말처럼 저도 돌이켜 보면 과거 여러 경험들이 연결이 돼 농업 IoT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가 2014년 국내 스타트업 창업지원 기관 스파크랩스 데모데이에서 기업 발표(IR)를 하고 있다.

김 대표가 2014년 국내 스타트업 창업지원 기관 스파크랩스 데모데이에서 기업 발표(IR)를 하고 있다.

1994년 초등학교 3학년이던 김 대표는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했어요. 게임보다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많았죠. 고등학생 때는 교내에 ‘홈페이지 동아리’를 만들어 동네 가게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2002년 서울 명동에서 ‘대한민국 청소년 벤처인 연합회’ 발대식에도 참여했어요. 김 대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죠.

“제 또래 아이들이 정장을 차려입고 CEO(최고경영자)라고 새겨진 명함을 건네주더라고요.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또래들은 벌써 사업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김 대표의 모토는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하자’였어요. 2004년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에 입학한 뒤 공부뿐 아니라 뭐든 하고 싶은 일은 닥치는 대로 경험했죠. 방송 분야가 재미있어 보여 3개월간 연예인 매니저도 해봤는데요. 지인의 부탁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준 인연 덕분이었어요.

2016년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영화·스타트업 축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내 'SXSW 액셀러레이터'에 참가해 김 대표가 투자자에게 자사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2016년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영화·스타트업 축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내 ‘SXSW 액셀러레이터’에 참가해 김 대표가 투자자에게 자사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미래 트렌드를 파악하는 연구에도 참여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포털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가 우연히 SK텔레콤에서 트렌드 리포트를 만드는 일을 알게 돼 참여하게 됐죠. 운 좋게도 그는 ‘퓨처리스트 겸 트렌드 분석가’ 선배 밑에서 일했습니다. 퓨처리스트란 유행을 예상하고 이와 관련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람을 말해요. 그 선배는 “앞으로 여러 분야가 통합·융합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러줬죠. 김 대표는 이때 남보다 한 발 앞서 ‘융합 시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 분야에 대해 깊게 아는 것이 당시 전문가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여러 분야를 통합할 줄 아는 사람이 전문가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워낙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 보니 진로에 고민이 많았는데 ‘사업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때 다양한 분야를 융합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김 대표는 2008년 군 제대 후 영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컬리지(CSM)’에서 디자인과 기업가정신을 결합한 교육을 받았죠. 구매 대행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무역의 과정과 방법론을 배웠고요. 최근에야 익숙해진 3D 프린터, 사물인터넷(IoT) 등 최신 IT 트렌드도 접했습니다.

2009년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던 그는 우연히 농업을 접하게 됐어요. 농업 자재창고 관리 회사를 운영하던 외삼촌의 부탁 때문이었죠. “농업 분야를 경험해보니 아직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스마트 화분 ‘플랜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됐죠. 외삼촌을 따라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무역협회 등을 돌아다니고 해외 진출 업무까지 담당하면서 실전 사업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때 ‘이제 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대표가 농업 IoT 회사인 ‘엔씽’을 창업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인터넷’, ‘트렌드 리포트 연구’, ‘영국 유학’, ‘외삼촌 농업 회사’ 등 수많은 일들을 경험한 결과였어요.

엔씽 팀원들과 함께.

엔씽 팀원들과 함께.

2015년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컨퍼런스 '비글로벌'에서 엔씽(맨 앞줄)이 우승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5년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컨퍼런스 ‘비글로벌’에서 엔씽(맨 앞줄)이 우승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요즘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해보지 않은 게 너무 많아서가 아닐까요. 머릿속으로만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안 될 거야’라며 시도하는 것조차 겁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무조건 관심 있는 것은 모두 경험했고 배운 게 너무 많았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무엇을 하든 반드시 배울 수 있습니다.”

그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길 강조하는 이유는 미래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이 10년 뒤에도 남아 있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거죠. 바둑 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결을 통해 인간을 뛰어넘는 AI의 위력을 여러분도 느꼈을 텐데요. 인간과 같이 스스로 학습하는 AI는 앞으로 많은 직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되죠. 단순하게는 가사도우미나 텔레마케터부터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까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영국 학자들은 사무직 노동의 약 50%가 20년 안에 대체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유학 시절 교수님이 처음으로 내준 과제는 ‘본인 관심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소개하라’ 였는데요. 취업이나 프리랜서, 창업 등 학생들 각자 진로가 다르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파악하라는 의미였다고 해요. 예를 들어 디자인 그래픽 분야 프리랜서가 되길 꿈꾼다면 프리랜서 집단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라는 거였죠. 김 대표는 이 과제에서 ‘모든 일은 네트워크가 첫 번째’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어떤 고양이 동호회가 있는지 파악해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기타를 치더라도 혼자 연주하지 말고 유튜브에 올리거나 버스킹을 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계속 그 분야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어요. 그 속에서 자신의 직업이나 진로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죠.”

지난해 엔씽이 덴마크에 수출한 컨테이너 박스형 실내 농장. 약 10평 크기 실내 농장은 한 번에 1500종의 식물을 키울 수 있다. 재배량은 기존 농장의 40배 이상이다.

지난해 엔씽이 덴마크에 수출한 컨테이너 박스형 실내 농장. 약 10평 크기 실내 농장은 한 번에 1500종의 식물을 키울 수 있다. 재배량은 기존 농장의 40배 이상이다.

김 대표는 최근 새로운 도전에 다시 나섰습니다. 도시 한가운데에 실내 농장을 만드는 일이에요. 실제로 김 대표가 만든 실내 농장은 지난달 덴마크에 수출되기도 했답니다. 33㎡(약 10평) 크기 컨테이너 박스형 실내 농장은 한 번에 1500종의 식물을 스스로 키울 수 있어요. 재배량은 기존 농장의 40배 이상이죠.

“앞으로도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일할 생각입니다. 회사 이름을 엔씽(n.thing)으로 지은 이유는 수많은 분야(n개)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표현한 겁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들로 수많은 점을 만들어 미래를 그려나갈 겁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객원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소년중앙]인터넷, 트렌드 분석, 기업가 정신…경험 엮어 ‘농업 IoT’ 분야 문 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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